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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인천 금곡교회에서 강의했습니다. 설지용형제와  최선아자매의 결혼식 주례하고 아내를 돕기위해 교회까지 운전한 다음, 강의 끝날 때 까지 기다렸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이훈 목사님의 '함께 걷는 순례자(두란노 서원) ' 를 읽었습니다.

    삶을 정착민, 관광객, 순례자로 구분해서 크리스챤의 올바른 삶의 태도를 제시한 잔잔한 책입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실생활을 소개한 후터라이트이야기가  많은 생각과 감동이 되어서 원문 그대로 소개합니다.

후터라이트라는 생활 공동체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울려 야구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점수를 기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었습니다.
" 왜 점수를 매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왜 점수를 매겨야 해요?"
                                                       ( P. 128)

그동안 축구를 많이 했는데, 우리는 왜 점수를 매겼을까요? 평소에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다음 기회가 되면 승패없는 경기를 하고 싶습니다. 기대 됩니다.

후터라이트는 처음 듣는 공동체였는데,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자료 조사했습니다.
위키백과 사전의 한국어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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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의 재세례파 신자인 야콥 후터는 1529년 후터라이트라고 불리는 개신교 공동체를 결성했는데, 이들 후터라이트 신자들은 개신교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탄압을 피해 모라비아로 피신하였다.

    개신교 신자들의 온상인 모라비아에서 생활하면서 후터라이트 신자들은 교육, 의료, 금속산업,공예품 생산에 종사하였다.하지만 30년전쟁이 벌어지던 1622년 합스부르크의 추방령으로 추방당하여, 동부 트라실바니아, 루마니아의 왈라키아,우크라이나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했다. 다행히 남부 우크라이나에서 같은 재세례파인 메노나이트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의 신앙전통을 재개하였다.
   
    1874년에는 미국으로 이민하였지만,제1차 세계대전당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면서 미국정부와 대립했다. 더구나 1차대전당시 독일은 적성국가였기 때문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후터라이트 신자들은 언어사용에서도 제한받았다.

    결국 이들은 캐나다로 이주하여 공동체생활을 재개했으며 지금도 사도행전 2:44-45에 근거한 기독교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신앙생활은 평일예배와 주일예배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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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터라이트의 일상 생활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공부합니다. 책이나 영화, 강의에서 알게 된 소재를 인터넷의 각종 사이트를 중심으로 조사하면서, 평소에 관심 갖고 자료를 모읍니다. 점점 전체적인 이해를 갖게 되면, 저의 삶에 적용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식사 시간과 가정 성경공부의 이야기 소재를 모으는 것이 아빠의 큰 역할입니다^^ 적당한 주제와 연결되면 강의에서 소재로 사용합니다. 오늘은 후터라이트의 삶을 묵상함으로 하루를 풍성하게 보냈습니다. win the campus, win the narions!

running & walking log (2008.3.21) 오래만에 빠른 속도로 모락산에 등산하다. 운동하면서 '사자 마녀 옷장이야기' BBC  라디오 편을 듣다.
거리 8.1km   운동시간 1:34   속도 5.19 k/h   칼로리 소비 493 kc   걸음 9,980

swimming log (2008.3.21)  산에서 내려와 곧 바로 수영하다. 기록을 세우다! 25M 42회 연속 수영..다리에 쥐나다. 요즘은 쥐가 문제^^
25M * 44회 = 1,100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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