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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찬@제주 성산일출봉

     드디어 막내 차례가 왔습니다. 그동안 기회 있을때 마다 아이들과 여행했는데,제주 열방대학 Mission Pespective 강의에 막내인 홍 영찬과 함께 갔습니다.  
   
      오전에는 강의실 근처에 와서  창문 너머로 아빠의 강의를 열심히 듣더군요^^  저녁에는 열방 대학 근처의 아름다운 산책길을 아빠와 함께 다녔습니다.
     
     비가 쉬엄쉬엄 오는 흐린 날씨에 성산 일출봉에 올랐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날아갈 듯 불었습니다. 정상 근처로 갈수록 바람이 세졌는데, 계단 옆에 보호 울타리 대신 아빠 손을 꼭 잡더군요^^

     2000년 한국에 돌아와서 잠시 살았던 열방대학 간사 숙소에  8년 만에 함께 갔습니다. 영찬이가 지네물린 사건을 기억못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고 그때 느꼈던 아빠의 심정도 말했습니다. 용감해지고 싶었던 네가 자랑스러웠다고...

     막내 영찬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밤에 자다가 지네에게 물렸습니다.  많이 울어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지네가 꽤 커서 곧 바로 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제주에서는 흔한 일이라 해독제 주사를 맞고 간단히 치료되었는데, 그 다음 날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위로 방문하러 집에 온 간사들에게 영찬이가 화를 내는 겁니다. 지네 단어만 나오면 괜히  짜증내기에, 조심스레 이야기했습니다. 간사들 들을까봐 염려하며 조용히 말한 것입니다.
    "지네 물린것이 걱정되어 찾아온 간사들에게 화를 내다니...네가 잘못하는거야.."

     계속되는 아빠의 말을 울먹거리며 듣던 영찬이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하더니, 아빠처럼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간사들 들을까봐 염려하면서...
    "아빠, 나는 지네 물린게 창피해요. 내가 지네에게 물리다니..이왕 물릴거면 호랑이나 사자에게 물려야지..조그만 지네에게 물리다니..이럴수가.."

당시 영찬이는 파워 레인저 팬이었습니다^^
win the campus, win the nations!

  요즘 일정이 많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블로깅 할 시간은 있었는데, 최근 한 두 주간은 정말 시간이 없네요^^ 조만간 웹하드 설교 파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파일을 올리려고 합니다. 필요한 파일은 미리 다운로드하세요.

다운로드 방법  www.webhard.co.kr  ID: wtcwtn PW:yw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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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가 말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1986년 가을, 예수전도단 광주지부에서 섬 사역에 대한 간증을 끝내자  질문이 이어졌다.섬에서 어떤 사역이 진행되는지 관심이 많았고, 대략 알고 있는 사람들도 직접 확인 하고 싶었나보다.. "몇 명이나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교회는 어느 정도 세워지고 있는지.." 좋은 질문이었지만, 답하기 쉽지 않았다. 예수전도단 신입간사였고 그야말로 이제 갓 출발한 어설픈 전도자 아닌가? 안그래도 피곤해서, 지쳐서, 쉬고 싶어서 여기 왔는데..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한 자매가 중요한 일이 생각난 듯, 조용히 질문했다.
"밥은 어떻게...?"


나의 가장 큰 고민, 날마다 반복되는 그 고민..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했건만, 아침은 빨리도 왔다. 밥 먹어야 하는..

사역 중심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던 나는 깜짝 놀라 말하기 시작했다.
"..아..네..밥을 잘 못 먹어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전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그러니까.. 그런 부분이 힘들어요..밥 먹는거요.. 어떻게 반찬을 만들어야 할지..그게 참..설거지는 쉬운데.."
횡설수설하면서 그 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 이런 자매와 결혼해야지.
 
나는  예수전도단의 훈련프로그램인 예수제자훈련학교(UDTS)를 수료했고, 전남 신안군에 있는 우목도에 다시 들어갔다. 그 섬은 우리 팀의  마지막 전도여행 지역이었다. "교회가 없어서 예수님을 믿어도 소용없다"는 섬 주민들의 말이, 그저 전도받기 싫은  변명이 아닌,  간절함으로 들렸다. UDTS 정리 기간에 계속 우목도를 위해 기도했다. 교회를 세워달라고..누군가 가서 교회를 개척하게 해달라고..저기 저 신학생이 가게 해 달라고..그런데 그만 기도를 너무 간절히 했나보다. 어느날 성경 말씀들이 오버랩되더니, 자꾸만 내가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공대생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결정해서 우목도로 갔다. 어차피 군 입대 전이었고, 휴학해서 시간은 많으니까..

이렇게 우목도 사역이 시작되었다. 사역은 즐거웠고, 전도도 잘 되고, 교회도 세워졌지만, 외롭고 피곤했다. 돈을 받지 않고 일을 도와 주었기 때문에 섬주민들은 나를 좋아했다.
열심히 일해주는 나에게 미안했는지 예배 시간에 와서 앉아 주는 분들이 늘어났다. 몇 사람은 믿기 시작했다. 신학생이 아닌 공대생 한명을 통해서 이렇게 교회가 시작되었다.

외딴 섬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는 소문이 났나보다. 간증 부탁하는 요청이 가끔 있었다. 외로움이 밀려 오기 전 잠시라도 섬을 떠나는 것이 좋아서, 육지(?)에 있는 모임에 기꺼이 참석했다. 그래서 광주지부에 갔는데....
그 곳에서 예쁜 자매를 만났다.
밥은 먹고 사냐고 질문한..
사랑은 서로의 필요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평소 내 생각과 딱 맞는 자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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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위에 손 얹고 신부가 약속했다. 나에게 내면의 음성으로 들렸다. 밥은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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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몹시 가파른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났다. 요즘 왜 이러나..다래끼 없어지니 쥐가 오다니..6Km에서 달리기를 중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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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I 컨퍼런스 마지막 날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생겼습니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아주 어렸을 때 이후 오래만입니다. 이리 저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3일 연속 축구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한데, 설마 그럴리가 있을까요^^

    눈이 아프고 불편한 것은 참을만 하지만, 호주 시드니 318 DTS강의 위해 출국하기 때문에 약간 신경쓰였습니다. ( 이 글은 인천 공항 라운지에서 쓰고 있습니다^^) 강의에 집중해야 하는데...눈 다래끼가 난 강사라니..아내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서 바늘을 소독하고 눈물 샘을 터트려 주었습니다. 조금 나아졌지만 속에 염증이 깊어 계속 아팠습니다. 평소  병원에 거의 가지 않기 때문에 참으려고 했습니다. 집을 나오는데, 막내 아들인 영찬이가 말하더군요. 아빠, 꼭 병원가세요..그것도 3번이나 말했습니다. 이런 것 같고 병원가야하는지 고민하다가 집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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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성경읽기@홍영찬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공항에 일찍 가려고 했는데,결국 병원에 먼저 갔습니다.
한가지 내면의 음성이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빠,엄마에게 순종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아빠로서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는가?
부부들이 서로 순복하라고 성경이 말하는데,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병원 가길 잘 했더군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지금 탑승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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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을 올리면서 몇 장면이 생각났다. 특히 결혼하기로 결심했던 그 날...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혼자 전도하고 있었고, 아내는 졸업후 낯 선 도시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사역보고 할 겸 서울 온 날,  오래만에 짧은 시간 데이트했다. 길을 못 찾아 헤매는 자매를 생각하며 그때 그 심정을 적어 놓은 글은 일평생 사랑의 고백이 되었다.

그 녀는 길을 못 찾았다.
아주 심하게 왔다 갔다 반복했다.

동생이 일하는 곳을 찾아가서 격려하고 싶은 언니의 마음을 읽고,
나도 보고 싶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낯선 도시에서 사랑하는 동생을 만난다는 마음이 앞 섰는지,
오래만에 나를 만나 함께 걷는 것이 설레였는지,
도무지 길을 찾지 못했다.

그때 결심했다.
그래, 이 자매와 결혼해야지.
나는 길을 잘 찾으니까.
살면서 내가 대신 찾아 줘야지...

돕기위해, 사랑하기위해, 내가 사랑하고 싶어서 결혼해야 한다.
받으려 하지 말고, 도와주고 싶어서...

                                                                          - 1989년, 홍 장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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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아내는 여전히 길 찾기를 힘들어 했다. 그건 문제되지 않았다. 함께 살며 내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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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제주 해안도로에서 김광일, 한정훈과 15K를 뛰다. 제주에 살면서 이 멋진 바닷가를 달리지 않는 것은 제주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말에 모두 동의하며 힘차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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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한겨레 신문 설문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중 30%가 결혼 서약이라고 답했습니다. 22%의 주례사를 이기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희 부부의 결혼식에서도 결혼 서약이 가장 중요한 순서였고, 결혼 20주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가정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저희부부는 서약문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부 뿌리 될때까지 사랑하겠다'는 다짐도 좋은 내용이지만, 예수전도단 간사와 선교사로서 멋진(?) 서약을 하고 싶었습니다.


    서약하는 순간까지도 서로의 내용을 몰랐습니다. 다만  '당신은 뼈중에 뼈요 살중의 살이다'라는 아담의 서약은 반드시 넣어 달라고 아내가 부탁하더군요^^ 그래서 마이크 들고 모든 증인앞에서 서약했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나의 아내로 맞아 들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그리고 유일한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겠지만 그것은 당신안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이후로 당신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더라도 나는 당신은 끝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때까지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위탁합니다.

-홍장빈의 결혼 서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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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간결하고 분명하게 서약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단 한 문장만 소개합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박현숙의 결혼 서약중에서..

  결혼식은 화려한 행사도 아니요, 복잡한 경조사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서약하고 공적인 결혼 선포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식 이후에도 거의 날마다  결혼 서약을 고백했고,
아침 저녁으로 암송한 날도 있습니다^^
결혼 서약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기를 힘쓰는 것,좋은 남편 행복한 아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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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캠퍼스 워십 광주투어를 마치고  밤 12시 20분에 돌아와서 5Km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 25분 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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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는 당시 예수전도단 대표인 홍성건 간사님 ( 현재 제주 열방대학 책임자, YWAM 동아시아 대표) 이 맡으셨다.

    생애 첫번째 주례여서 그랬을까 주례사만 정확히 한시간 하셨다. 주례사 제목이 '이 비밀이 크도다' 였는데 결혼과 가정의 큰 비밀을 세미나 형식으로 주례한 보기 드문 결혼식이었다. 주 내용은 '결혼하면 좋은거다' 이런 내용인데, 그 것을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로 나눠서 말씀하셨다. 참석한 하객들이 처음에는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가 아예 끝나기를 포기하고 강의(?) 내용에 집중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가정들이 결혼과 가정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했다는 결혼 후기를 들었다.

      신랑인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결혼식이 시작되면서 긴장되고 떨렸는데 끝나지 않는 주례사를 가만히 듣다 보니 차츰 안정되었다. 그냥 세미나에 와 있는듯한..결혼식이 객관화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예수전도단에서 늘 듣던 홍성건 간사님의 강의인지라 집중도 잘되고..

   올 해 부터 내가  결혼 주례를 시작했다. 5분에서 7분정도로 주례사한다^^ 60분에서 5분으로 줄였으니 줄여도 너무 많이 줄인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30분안에 결혼식을 마치기 위해 주례사를 줄이고, 결혼식 앞부분도 가능한 간결하게 진행하고, 축가도 없앴다. 그 대신 결혼 예배의 중심으로  후반부 15분 정도를 함께 찬양하면서 신랑 신부를 위해 기도한다. 이런 순서로로  4번 주례했는데 좋은 결혼 예배였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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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있는 좋은 주례사 샘플은 '먼저 이 경사스러운 날을 맞은 양가 부모님들께 뜨거운 축하를 드리며, 아울러 바쁘신 중에도 왕림해 주신 일가 친지, 그리고 모든 하객 여러분들께도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로 시작해서 '물이 깊으면 고기가 많이 모여 살고, 숲이 울창하면 새가 많이 깃들 듯이 사랑이 충만한 사람 주위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로 진행하다가 '오늘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 보는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아직 부족한 두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항상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충고와 격려로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로 끝내야 한다고 제시한다^^

 좋은 주례사란 무엇일까? 결혼 20주년이 다가오는 우리 부부에게 가종 소중했던 주제를 정리해서 '믿음,소망,사랑'의 5분 주례사를 만들었다.

2008년 5월 17일에 결혼한 예배 팀 간사 김명선 자매와 Godpeople.com에 근무하는 이용준 형제의 결혼 예배 주례사와 신랑 신부의 서약입니다. 신랑 신부 동의하여 이곳에서 공개합니다^^


설지용&최선아, 임완득&선유리, 이용준&김명선, 이효성&배은주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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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러닝 머쉰에서 50분 달리다. 2% 경사. 8-9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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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그렇겠지만 결혼식은 긴장된다. 신랑 입장 5분 전에 주위에 있는 아무에게나 조언을 구하려고 둘러 보았다. 마침 아내의 오빠인 처남이 있어서 물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형님 대답하길
-야, 그걸 지금 물어보면 어떡하냐..빨리 입장해.. 우리 결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만 긴장했나보다. 신부는 즐겁게 웃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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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긴장을 잘했다. 결혼전에는 왜 그리 긴장의 연속이었을까. 설교전에도 설교중에도 누구를 만나기전에도 만나는 중에도.. 삶은 긴장의 연속같았다. 그런 긴장이 결혼 후에 없어졌다. 그동안 외롭고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책임에 대한 과다한 부담때문이었든지. 결혼후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누리고 행복해지면서 신기하게도 매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긴장이 없어졌다. 아내는 어려서부터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서였을까..그저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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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특히 형제들.가정을 이루고 책임을 지고 한 여자를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 겁이 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라면 그 모든 것이 편안하고 즐거운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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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결혼할까요? 평생 들은 이야기중 가장 행복한 질문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 준비하면서 장소와 관련된 의논을 많이했습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 검소한 결혼식, 우리 부부에게 의미있는 장소, 예배할 수 있는 좋은 장소...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남 광주에 있는 선교사 동산에서 결혼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선교사 동산에 있는 작은 예배당앞 농구장 겸 놀이터를 꾸며서 만든 야외 결혼식장입니다 ^^

선교사 동산에서 결혼한 이유는 다음 3가지입니다.


1) 아내에게 신앙 생활의 중요한 성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예수전도단 광주지부 금요모임이 선교사 동산 예배당에서 드리고 있었는데, 학생으로 몇 년 동안 참석하면서 많은 은혜가 있었답니다. 아내가 될 자매에게 중요한 장소라면 내게도 중요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2) 광주 양림동 선교사 동산에는 21명의 선교사 묘가 있습니다. 나도 그 분들처럼 살고 싶어서 선교사 동산에서 결혼했습니다.

3) 가을 볕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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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간사가 두명되었습니다^^


       그 대신 학생들이 고생했습니다. 전기도 없고 의자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공터가 아주 중요한 곳이라며 숙연히 설명하는 간사의 표정따라 모두 숙연해 지더니 단 하루만에 멋진 결혼식장으로 바뀌었습니다. 'YWAM은 데코'라며 스스로 감동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광주지부 대학사역의 간사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결혼해야 두명이 되니 학생들이 열심낼 만도 했지만, 그 보다는 선배인 아내를 위한 사랑의 마음이 컸습니다.

결혼식 끝나고 수고한 학생들과 케익 케팅 할 때 학생들이 말하더군요.
다시는 이런 결혼식 못하겠다고..그래서 나도 말했습니다.
나도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혼,
세상의 세속적인 기준에 끌려가지 말고,
힘있는 가정을 이루도록 용기있게 출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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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10Km의 기록을 세우다. 56분 28초. 천천히 달렸는데 시간은 점점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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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업데이트 안되는  블로그에 찾아와서 읽은 글 다시 읽고, 옛 글도 이리 저리 찾아 읽고,
방명록에 글도 남기고, 왜 글을 안 쓰냐며 걱정 반 궁금 반으로 연락한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한 달이라도 글쓰기 쉬려다가 내가 먼저 지친것 같습니다^^

올 해부터 결혼식 주례를 시작해서인지 요즘들어  우리 부부의 결혼식이 생각납니다.
'홍장빈의 승리의 전략'의 2기 블로깅은 홍장빈, 박현숙의 결혼예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내일부터 올라오는 글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 거리가 들어있습니다^^
참, 지난 10월14일이 결혼 19주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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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장빈 & 박 현숙, 1989년 10월 14일@ 광주 선교사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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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30Km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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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쓰기는 꽤 오래 걸렸다. 원래 글을 빨리 쓰는 편이 아니지만, 유난히 힘들었다. 책상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추석이라 그에 맞는 글 쓰려고 마음에 담아 두었는데, 가족에 대한 글 쓰겠다고 예고도 해놓고.. 연휴 끝나기 전에는 올리려고 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그리움이 밀려와서 글쓰기가 어려웠나 보다...아버지에 대한 글이어서 그랬나 보다...

추석이 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초등학교때 돌아가셨으니 너무도 오래전 이어서 색바란 흑백 사진 같은 흐릿한 몇 장면 있을 뿐인데..그 중에서도 비교적 선명한 것은 박하사탕의 추억이다.

우리 집은 작은 바닷가에 있었다. 얼마 전 전국을 강타한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의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 곳엔 기름이 오지 않아 전국의 많은 사람에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위안을 주었던 곳, 몽산포 해수욕장이다. 마을이 작다보니 학교도 작았다. 한 반 아이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방학식에 나눠주는 성적표에는 등수가 항상 적혀 있었다.

어느 해 던가, 나는 1등을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날마다 해변에서 뛰어 놀다가 시험공부란 것을 했고, 친구들은 계속 뛰어 놀았다. 성적표를 들고 집에 가는 길은 정말 신났다. 만나서 함께 가는 막내 여 동생은 7등, 바로 밑 남동생은 14등... 반에서 거의 꼴찌였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를 앉혀놓고 성적표에 도장을 찍으신다.
먼저 나를 보시더니 잘했다. 공부를 잘했구나...여기 상이 있다. 커다란 사탕 하나를 주셨다. 너는 1등했으니 사탕하나 먹어라. 시골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아주 커다란 박하 사탕을 상으로 받고 나는 신났다.

여동생의 성적표를 보시더니 너도 잘했다. 7등 했으니 너는 사탕 7개 줄께..1등은 하나, 7등은 일곱 개, 계산하기도 쉽구나..

우리 가족은 모두 놀랐다. 고개 숙이고 있던 남동생은 혹시하며 설마하며 더 놀랐다. 바닷가 백사장과 몽산포소나무에서 늘 뛰어 노는 아이에게도 그건 너무나 간단한 산수였으리라..
너도 잘했다. 14등은 사탕 14개다.

그리곤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사람은 모두 귀한거다. 기분좋게 살아야 한다. 자신감으로 살아야 한다. 아마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1등했으면 그걸로 기쁘고, 14등 했으면 사탕이라도 많이 먹어야 기쁘고...

동생은 하루에 하나씩 사탕을 먹었다. 동네 친구들은 그걸 그렇게 부러워했다. 마치 상장인 것 처럼  자기 성적표를 흔들어 보이는 그 모양은 우스웠지만..
 
win the campus, win the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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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22Km / 2시간 30분 ) 힌국에 돌아온 다음날, 여행 피로를 끊으려고 최장거리를 달리다.
9월 14일 (10Km / 9분 40초) 10K의 새로운 기록, 10분 벽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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